김지하가 말하는 김지하 - 지하라는 필명
내맘대로 쓰기2010. 11. 14. 21:46
이름은 ‘위(位)’요 ‘궁(宮)’이라 ‘중(中)’ 즉 ‘마음’이 놓이는 ‘자리’를 말함이다. 일종의 ‘닻’의 뜻이다. 큰 바람이 불기 전에 벌레들이 자리를 옮기는 것은 그 때문이니 내게 큰 변화가 올 것이 틀림없다.
연초에 역(易)에 물으니 왈,
‘견군용(見群龍)’이라 했다.
천지가 요동하는 대개벽이다. 짐작대로다.
처신을 물으니 왈,
‘무수길(無首吉)’이라 했다.
‘목이 없으면 길하다’는 뜻이다.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목을 숙이지 않으면 가차없이 잘려나간다는 뜻이니 그러매 크게 깊이 겸손해야 겨우겨우 길하다는 말로도 된다. 그만큼 내게 다가올 변화는 심각하고 그에 대한 대응은 어렵다는 것이리라.
또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연초 한낮 내 방에 그냥 홀로 무료하게 앉아 있을 때다. 문득 ‘노겸(勞謙)’이란 두 글자가 뇌리에 떠올라와 그 의미가 깊이 각인된다. ‘근로’와 ‘겸손’이니 언뜻 알아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앞으로 내 호(號)로 삼기로 작정하였다.
‘열심히 일하는 겸손’이요 ‘활동하는 무(無)’요 ‘아상(我相) 없는 노동자’, ‘노예 노동자’의 옛 뜻이기도 하다. 도대체 내가 그 동안 얼마나 게을렀으면 ‘근로’가 나오고 또 얼마나 오만방자했으면 ‘겸손’이 나오랴 싶었으니 앞날이 더욱 걱정되었다. ‘근로’와 ‘겸손’ 아니면 갈가리 찢겨나가 살 수조차 없는 운명이라는 내 맏아들 놈의 연초 카드점괘가 이미 나와 있었으니까.
물론 나도 안다. 『주역(周易)』의 겸괘(謙卦)는 노겸군자(勞謙君子)가 곧 타고난 천자(天子)이면서도 남의 밑에서 고개 숙여 근신하며 온갖 선행을 다 베푸는 그 아름다운 법(法)으로 결국 하늘을 차지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나는 그런 뜻에는 일말의 흥미도 없다. 나 같은 뼛속까지의 쌍놈, 민중에게는 도무지 안 맞는 뜻풀이기 때문이다. 그저 윤리적 패러다임으로서는 ‘근로’와 ‘겸손’일 뿐이니 내게 지금 결핍되어 있고 앞으로 그렇게 일관하여 고개 숙이고 살다 가지 않으면 큰 실수를 범할 것이 빈번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굳세게 견지할 따름이고, 미적 패러다임으로서는 곧 ‘활동하는 무(無)’의 뜻이리라! 언어작업에서 훨씬 더 여백(餘白)과 틈과 침묵을 살리고 설명을 없애며 말을 줄이는 대담한 소통성(疏通性)으로 ‘흰 그늘’과 ‘한’을 스스로 움직이게 하고 삶의 내면에서 무궁무궁 저절로 살아 생성하게 하는 그런 텅 빈 창조력의 언어구조를 갖추고 닦으라는 가르침으로 일단 받아들일 따름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이제 작년 개천절에 공언(公言)한 대로, 아버님이 지어주신 이름, 꽃 한 송이 ‘영일(英一)’로 돌아가고자 한다. 내 인생과 민족 역사에 작고 소담하고 예쁜 삶의 꽃 한 송이만 피우고 가겠다는 조촐한 서원과 함께…….
그렇게 하여 결정된 것이 바로, 노겸(勞謙) 김영일(金英一)이다.
그런데 여러 친구들이 말한다. 영일은 너무 애이름 같으니, 그냥 한글로 ‘김노겸’이라 부르면 어떠냐는 것이다. 그 편이 무던하고 친밀감이 있어 좋다는 것이니 원컨대 부디 앞으로는 이 이름을 즐겨 불러주길 바란다.
연초에 역(易)에 물으니 왈,
‘견군용(見群龍)’이라 했다.
천지가 요동하는 대개벽이다. 짐작대로다.
처신을 물으니 왈,
‘무수길(無首吉)’이라 했다.
‘목이 없으면 길하다’는 뜻이다.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목을 숙이지 않으면 가차없이 잘려나간다는 뜻이니 그러매 크게 깊이 겸손해야 겨우겨우 길하다는 말로도 된다. 그만큼 내게 다가올 변화는 심각하고 그에 대한 대응은 어렵다는 것이리라.
또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연초 한낮 내 방에 그냥 홀로 무료하게 앉아 있을 때다. 문득 ‘노겸(勞謙)’이란 두 글자가 뇌리에 떠올라와 그 의미가 깊이 각인된다. ‘근로’와 ‘겸손’이니 언뜻 알아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앞으로 내 호(號)로 삼기로 작정하였다.
‘열심히 일하는 겸손’이요 ‘활동하는 무(無)’요 ‘아상(我相) 없는 노동자’, ‘노예 노동자’의 옛 뜻이기도 하다. 도대체 내가 그 동안 얼마나 게을렀으면 ‘근로’가 나오고 또 얼마나 오만방자했으면 ‘겸손’이 나오랴 싶었으니 앞날이 더욱 걱정되었다. ‘근로’와 ‘겸손’ 아니면 갈가리 찢겨나가 살 수조차 없는 운명이라는 내 맏아들 놈의 연초 카드점괘가 이미 나와 있었으니까.
물론 나도 안다. 『주역(周易)』의 겸괘(謙卦)는 노겸군자(勞謙君子)가 곧 타고난 천자(天子)이면서도 남의 밑에서 고개 숙여 근신하며 온갖 선행을 다 베푸는 그 아름다운 법(法)으로 결국 하늘을 차지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나는 그런 뜻에는 일말의 흥미도 없다. 나 같은 뼛속까지의 쌍놈, 민중에게는 도무지 안 맞는 뜻풀이기 때문이다. 그저 윤리적 패러다임으로서는 ‘근로’와 ‘겸손’일 뿐이니 내게 지금 결핍되어 있고 앞으로 그렇게 일관하여 고개 숙이고 살다 가지 않으면 큰 실수를 범할 것이 빈번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굳세게 견지할 따름이고, 미적 패러다임으로서는 곧 ‘활동하는 무(無)’의 뜻이리라! 언어작업에서 훨씬 더 여백(餘白)과 틈과 침묵을 살리고 설명을 없애며 말을 줄이는 대담한 소통성(疏通性)으로 ‘흰 그늘’과 ‘한’을 스스로 움직이게 하고 삶의 내면에서 무궁무궁 저절로 살아 생성하게 하는 그런 텅 빈 창조력의 언어구조를 갖추고 닦으라는 가르침으로 일단 받아들일 따름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이제 작년 개천절에 공언(公言)한 대로, 아버님이 지어주신 이름, 꽃 한 송이 ‘영일(英一)’로 돌아가고자 한다. 내 인생과 민족 역사에 작고 소담하고 예쁜 삶의 꽃 한 송이만 피우고 가겠다는 조촐한 서원과 함께…….
그렇게 하여 결정된 것이 바로, 노겸(勞謙) 김영일(金英一)이다.
그런데 여러 친구들이 말한다. 영일은 너무 애이름 같으니, 그냥 한글로 ‘김노겸’이라 부르면 어떠냐는 것이다. 그 편이 무던하고 친밀감이 있어 좋다는 것이니 원컨대 부디 앞으로는 이 이름을 즐겨 불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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